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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isesang, 2011/05/25 01:11, 잡문]
기자가 되고 난 후 제일 어려웠던 게 인터뷰 즉 사람을 찍는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가진 '무게'를 사진으로 나타내야 하는데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십여년 전 한 여성 국악인을 음악동아에 실으려고 인터뷰 사진을 찍으면서 소나무 숲 사이에 앉히니 한복을 입었던 그 분이 '꼭 앉아야 하냐'며 힐난성 질문을 하고 못 내키는 표정으로 앉았던일을 잊을 수 없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어떻게 찍어야 그럴듯한 사진이 나올까 고민하면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며 시도한 포즈였는데 피사체가 화만 안냈지 불쾌해하니 당황할 수 밖에. 현상돼 나온 사진을 보니 정말 별거였다. 구도도 어색하고 표정은 더 어색했다. 아마 내가 웃으라고 한 모양이었다.

애송이 기자 시절 사람을 찍는 다는 것은 거대한 벽을 넘는 일이었다. 사람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은 고사하고 구도와 배경등등 사진에서 기초로 여기는 것들을 제대로 한 화면에 담기가 힘들기만 했다. 선배들처럼 언제 멋있는 사진을 찍을까 고민도 참 많이 햇던 것 같다. 노력을 했던 아니면 세월이 흘러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었던 지금은 그 때 처럼 긴장은 되지않지만 도전의 감정은 늘 있다. 거의 매일 이런 도전을 하며 살아가는 게 싫지않다. 그 긴장을 즐길 때도 있다. 찍은 사진이 맘에 들면 긴장을 기다리기도 한다.
사람이 점으로 보이는 그런 사진 말고 피사체와 내가 인연으로 만날 때의 인물 사진 찍기란 마음을 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먼저 내 앞에 서있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저 사람의 '냄새'는 어떤지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저 사람의 모든 것을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다듬어 온 마음으로 비춰봐야 한다. 누구고 향기란 있는 법이다. 내 마음은 그 향기를 맡으려 노력한다. 그 향기가 그 사람의 어떤 표정에 나타나는지 어떤 방향에서 보이는지 아니면 몸짓에서 느껴지는지 마치 슈퍼 컴퓨터처럼 빠르게 알아차리고 어떻게 찍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찍어야 하는 사람의 너무 맑은 기운에 부끄러워 카메라를 들 엄두조차 내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럴 땐 기운을 받아들여야 한다. 귀 기울여 듣고 마음을 모아 공감하면 기운은 전해져 온다. 그런 후 카메라를 들어야 찍을 수 있다. 사진을 찍을 힘이 없으니 그렇게라도 해야한다. 이렇게 찍은 경우는 전 서울미대 교수 최종태선생 이었다. 조각에 투영된 단순화 된 선은 사색의 결과였고 아무나 경험하지 못했던 체험의 발로였다. 선생 역시 고결한 기운을 가진 분이었다. 찍기 힘들어 선생의 말을 경청하고 그 때 나오는 기를 받아 겨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내가 찍은 것이 아니라 최종태 교수가 최종태 교수를 찍었던 셈이다. 즉 찍고 찍히는 주체와 객체가 다르지 않았다.  지난글에서 언급했듯 내가 나를 찍는 것이다.
인물 사진을 찍으며 공감할 수 있는 분을 만날 때 귀한 인연이라고 여긴다. 만약 사진을 찍지 않았다면 그런 맑음과 푸근함을 느끼기란 힘들 것이다. 이 때 느끼는 것은 과장한다면 책 몇권에서 얻는 것보다 많다.
피사체와 교감하며 내가 피사체인양 또 피사체가 바로 저 사진쟁이 인양 느끼며 사진을 찍을 때....이 때 찍은 사진이 제대로 된 사진이다. 좋은 인물 사진은 내가 좋아하는 사진이 아니라 찍힌 사람이 좋아하는 사진이다. 더 좋은 사진은 찍은 사람도 찍힌 사람도 귀하게 여기는 사진이다. 세상에 알려지는 대부분의 사진은 찍은 사람이 맘에 들어하는 것들이다. 만약 찍힌 사람이 좋아하는 사진들이 돌아다닌다면 그 수는 훨씬 줄어들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도 사진을 찍으며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즐거움을 두 번이나 느꼈다. 한 번은 나와 동갑인 한 스님의 맑은 웃음에서 선하디 선한 마음을 읽었고 또 한 번은 신나게 장구를 쳐대는 김덕수씨의 경쾌한 몸짓과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힘에서 그를 움직이는 게 세상을 즐겁게 하려는 열정 이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어쩔땐 너무도 지겹게 느껴지는 숙직하는 야심한 밤에 TV에서 나오는 책 소개가 하필이면 사진관련 책인데다가 '사진이란 결국 사진가의 시선을 보는 것'이라고 말하는 패널의 말을 들으면서 '어떻게 저런 이쁜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란 생각에 미소지었다. 내 시선이 가장 잘 느껴질 수 있는 게 바로 인물 사진이라고 여기고 또 주장하고 싶어 괜히 몇자 적고 싶었다.
[urisesang, 2011/05/23 19:24, 사진공양]
 

세 번째에야 비로소 찍은 청량사 응진전이다. 처음 두 번 응진전에 갔을 때는 별다른 느낌이 생기지 않아 사진을 찍지 않았으나 하루를 지내는 여유로운 일정에 사진을 찍을 겨를이 마음에 생긴 것이다. 마음은 이토록 중요하다. 항상 마음이라는 키워드를 태그에 넣는 것도 그것 때문에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각설하고...길상사에서 사진 공양을 올릴 때 인연을 맺었던 운산스님이 지금 응진전에 살고 계시기에 응진전을 가끔 찾는다. 가끔이 길 때는 몇년이고 짧을 때는 몇 달이다. 길건 짧건 스님과 나는 항상 그대로다. 이런게 인연일 것이다. 흔히 입에 올리는 인연,인연과는 다른 인연 말이다. 이번 방문 역시 '인연 따라' 간 것인데 좋은 시간과 또 맘에 드는 사진을 찍어서 기분이 좋다. 그 유쾌함이 글에도 나타날 것 같다.

응진전은 흔한 절은 아니다. 법당이라고는 부처님과 16나한을 모신 응진전이 유일한 법당이다. 요사채는 저만큼 뚝 떨어져 있고 법당과 요사채는 전부 깎아지른 바위 밑에 지어져 있다. 법당과 요사채의 중간에는 언젠가 선원이 들어설 것 같다. 00선원 터라고 운산스님이 적어놨는데 스님의 원이 느껴진다. 응진전은 인적이 드문데 있다. 울창한 산속에 있는 게 아니라 개방돼 있는 바위아래 있고 시야도 좋아 탁 틔여있는지라 절해고도 같은 느낌을 준다. 휴일이나 돼야 이따금 지나는 등산객을 보는 게 만나는 사람의 전부다. 앞에 보이는 산자락은 평온한 느낌을 준다. 응진전 뒤의 바위들과 음양의 조화를 이룬듯 보여진다. 그 안온한 자락 어디에 왜구를 피해 고려말 왕조가 한달간 행성을 지어 피난을 왔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스님이 밭을 갈 때 조선시대 혹은 고려시대의 깨진 그릇들이 나온다. 스님은 그 조각들을 찻잔을 받치는 접시로 쓴다. 응진전을 떠나오기 전 스님이 법당 아래에 뿌릴 목화씨를 손보는데 구경을 했다. 아마 9월쯤 가면 응진전 어디 아래에 하얀 목화들이 지천으로 널려있을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또 다른 사진이 나올 것이다.


사진도 사진이지만 이번에 응진전에 대해 안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고려시대 때 청량사의 본찰은 지금의 자리가 아닌 응진전이라는 것과 법당 뒤의 큰 바위에 많은 기가 뭉쳐져 있다는 것 또 응진전에 모셔진 불상들은 본래의 그것이 아니고 최근에야 조성됐다는 것 등등 응진전과 그것을 둘러싼 지식은 응진전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웠다. 무엇보다 이렇게 기가 꽉 뭉쳐있는 곳에서 편히 쉴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하룻밤은 꿀맛 같은 잠을 잤다. 이것도 인연일 것이다. 스님과 나 그리고 바위...그리고 이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과의....

요즘 카메라를 들면서 생각하는 키워드는 '不二'다. 내가 찍는 피사체는 바로 나다. 내가 나를 찍고 있는 것이다. 나와 찍히는 나는 같지는 않지만 또 다르지도 않다. 내가 사진으로 가야할 길이다. 저 바위와 응진전이 바로 나일수 있다. 아니 나다. 하지만 카메라를 든 나라고 말할 수 없다.

[urisesang, 2011/05/12 08:15, 잡문]
요즘 제가 우리세상 때문에 약간 혼란스럽습니다.
하루 1-2백명 정도의 방문객이 적당한 수준의 블로그인데 거의 천명이 들어오시니 이상하기만 합니다.
내용도 불교 사진에 제식대로의 해석을 붙인 그저그런 블로그인데 제 생각보다 과도한 방문으로 여겨집니다.

한 두달 계속해서 방문객이 늘어나 오시는 분들이 일주에 한장의 사진을 볼 때도 있어 죄송한 마음에 과거에 찍었던 사진을 찾아내  포스팅을 해왔는데 방문객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사실 동아일보 저널로그에 더 신경을 써야할 처지이나 포스팅이 너무 어려워 하지 못하는 대신 여기에 포스팅을 하고 있는데 방문객 차이가 너무 나 찜찜하기도 합니다.

제식대로 찍은 불교사진과 그것을 또 제 마음대로 해석한 글이 거의 대부분인 '우리세상'은 제가 봐도 특이한 블로그가 아닙니다. 같이 사는 가족들 조차 재미없다고 외면하는 구닥다리 블로그이지요. 또 댓글도 가물에 콩나듯 하고 또 어쩌다 올라오는 댓글을 주인장이 심드렁하게 바라보니 이곳을 통해 저와 방문객들이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도 거의 들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무대에서 배우 혼자 일인극을 하고 관객들은 자리에 앉아만있는 '조용하고 이상한 무대'이지요. 7년간 찍어 온 불교사진의 변화가 눈에 띄는 정도가 겨우 내세울 수 있는 얼굴이라면 얼굴입니다.

뭐에도 쉽게 혹하지 아니하는 연습중이라 이 블로그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담담하게 바라 볼 것입니다. 뭐 볼게 있기에 블로그에 오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도 이상해서 한 번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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